[089] 사랑하다 -미셸 퓌에슈

2017. 1. 13. 16:38Book

반응형

사랑하다 -미셸 퓌에슈


사랑은 진정성을 전제로 하며 ...
사랑을 배우는 것은 종종 진정한 자신이 되는 것을 배우는 최상의 기회가 된다.

작가 미쉘 퓌에슈는 파리 소르본 대학의 철학 교수로 ‘나는 오늘도’ 라는 시리즈로 ‘사랑하다’, ‘설명하다’, ‘수치심’ 3권의 책을 소개하고 있다. 나는 그 시작으로 ‘사랑하다’를 읽었다.

출판사는 이 시리즈를 아래와 같이 리뷰하고 있다.


 

“하루에, 나의 행동 딱 하나만, 깊게 생각해보기.

그렇게 나 자신이 되기, 매일매일 조금씩!! ”

매일 하는 철학은 우리의 삶을 변화 시킨다.


 

“매일 하는 철학은 우리의 삶을 변화 시킨다.” 우리 회사에서 책을 읽고 철학을 공부하게 하는 이유가 이 리뷰에 있어서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 무엇을 사랑 하느냐?

  •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그만 사랑하다.

  • 무의지적인 면이 우세하다.

  • 달콤한

  • 비할데 없는

  • 천하무적

  • 살아 있음

  • 사랑할 때 우리는 원초적이다.

  • 우리는 그저 운명적 사랑의 희생자가 아니다.

  • 사랑이란 상대가 일종의 절대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걸 인정하는 전제로 한다.

  • 우리가 이익에 무관심한 것은 한편으론 다른 것에 열정적으로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 사랑하는 사람과 아주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심지어는 하나로 결합되어 있다는 느낌이 있다.

  • 사랑을 위해 불행을 감수하는 것.

  • 사랑하는 사람과 완전히 하나가 된 느낌을 준다.

  • 또다른 내가 아닌 진정한 타자.

  •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느 정도까지 절대적 가치를 부여해야 하는 걸까?

  • 사랑하는 사람에게 객관적이지 못한 것은 정상이다.

  • 때로 사랑이란 서로를 가르치고 재교육하는 것이자 사랑 안에서 서로를 향상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 이상화하되, 신격화하지 않는 것.

  • 사랑은 신비로 가득하다.

  • 인간의 사랑은 문화적 창조물이자 예술적 창조물이다.

  •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고자하는 것은 인간 실존의 강력한 상징이다.

  • 사랑은 또한 고통을 낳는다.

  • 진정한 사랑의 아프은 사소한 고통이 아니라 진짜 고통, 가장 격렬한 고통 중 하나이다.

  • 사랑은 행동을 포함한다.

  • 사랑에는 대가가 따른다.

  • 새로운 사랑을 할 때마다 우리는 사랑의 옵션들을 빠짐없이 배치하는 독특한 방식을 만들어낸다.

  • 상대를 돌보고, 관계를 돌보며, 또한 자신을 돌보는 것.

  • 사랑한다는 것은 중요성을 부여하기로 약속하는 것이며, 뒤집어 말해 사랑받는 것은 누군가에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 운명적 사랑에 대한 갈망은 어른이 되고 싶은 욕구, 사춘기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욕구와 뒤섞여 있다.


 

위 글들은 책에서 말하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 이다.

위에 쓰지 않은 글 중 ‘주목 받고 선택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해 사랑을 하는 사람도 있다.’라는 대목이 있는데, 딱 나라고 하고 싶진 않았지만 그건 나였다. 서른이 넘어 깨달은 사실인데 나는 상대를 사랑한다기 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내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는 것 같은, 그 에너지를 즐기고 있었던 것 같다. 어디에서 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지만 분명 성숙이 덜 되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아마도 자존감의 문제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다시 든다.


 

나는 항상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에서 나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했다. 아니 지금도 그러고 있다. 그런 타인의 인정 중 ‘사랑’은 가장 강력하다. 자존감이 낮은 나에게 연애는 마약과도 같은 거여서, 연애를 잠시라도 쉬게 되면 자존감 역시 바닥을 쳤다.

그래서 인걸까, 나는 초등학교때부터 결혼하기까지 연애를 쉰적이 없었다. 아니 쉴수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내 인생 가장 큰 연애 공백기였던 서른세살은, 뒤돌아 생각해 보니 나 자신에 대해 나의 연애에 대해 가장 많은 생각을 했던 시기가 아니었었나 싶다.

내 이별의 모든 원인을 어느정도 찾아냈으니 말이다.


 

나는 이별의 원인은 상대에게 있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들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사랑에 무감각해진 내가 문제였던 것이다. 상대나 상대의 마음보다는 상대를 향한 내 감정과 마음이 우선이었고 그게 다하면 그 만남은 끝나고 마는 것이다.

그런 내가 결혼을 해 살고 있다. 앞선 이야기들을 읽고보면 꽤나 도박같은 사고(?)를 친것 같을 것이다.

나라고 걱정이 안되겠는가.

이번은 다르다고 정말 잘살 거라고 한다 해도, 또는 자신이 없다 한다 해도 사람일은 한치 앞을 알 수 없으니 장담하는 건 오만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결혼을 결심한 주요한 한가지가 있다.

남편이 내게 하는 배려를 거울 삼아 나는 반성하고, 달라져야 한다 자각한다는 것이다.

아직도 나는 미성숙한 모습으로 남편을 힘들게하며 상처를 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에서도 “사랑은 진전성을 전제로 하며, 그저 관심을 끌려 하거나 다른 사람인 양 연기를 해서 얻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랑을 배우는 것은 종종 진정한 자신이 되는 것을 배우는 최상의 기회가 된다.” 라고 했듯이 나도 어쩌면 진정한 내가 되기 위해 배우고 있는 최상의 기회를 누리고 있는걸지도 모른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