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 체르노빌의 아이들 - 히로세 다카시

2017. 1. 13. 15:18Book

반응형

‘진실만을 말하는 것’은 우리가 이 땅에 선출직 리더들에게 요구해야 할 가장 기초적인 덕목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통치를 맡기는 자들이 기초적으로 갖춰야 할 판단기준이기도 하다.

단 한 명의 정신병자 정치인이 위험을 초래하는 게 아니다. 설령 그들이 떼로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국가를 위협하는 최고의 위험은 바로 ‘그들 거짓말쟁이들이 우리를 제대로 리드해줄 것’ 이라고 시민들이 믿기 시작하는 순간, 시작된다.


 

우리 중 어느 한 명이 그들(정치인들)에게 거짓말을 하면, 그것은 씻을 수 없는 범죄가 된다. 하지만 소수의 그들 중 누군가가 우리 모두에게 아주 효과적으로 거짓말을 하면, 그것은 바로 정치(politicw)가 된다.


 

역사는 우리 삶의 확장판이라고 한다.

어떤 판단을 하느냐에 따라 나의 역사의 인류의 역사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나라 모습은 어떤가?

우리는 얼마나 많은 거짓말에 속고(속아주며) 살았고 살고 있을까?

히틀러는 어떻게 1,100만 명을 죽였고 그들은 왜 고스란히 죽을 수 밖에 없었을까? 우리는 왜 최근까지도 광주민주화운동을 빨갱이들이 일으킨 폭동으로 알고 있었을까?

대답 대신 한숨만 나오게 하는 질문들이 아닐 수 없다. 책에서는 문명들의 평균수명이 200년 남짓인 이유에 대해 열거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위대했던 문명들의 평균수명이 200년 남짓인 이유는 무얼까?”

가만히 들어다보면, 이들 문명은 거의 모두 동일한 과정을 밟은 것으로 보인다. 속박에서 숭고한 신념, 숭고한 신념에서 용기, 용기에서 자유, 자유에서 풍요, 풍요에서 안주, 안주에서 무관심, 무관심에서 의존, 그리고 마침내 다시 의존에서 속박으로…..


 

그 이유는 바로 [속박 - 신념 - 용기 - 자유 - 풍요 - 안주 - 무관심 - 의존 - 속박 - 신념 … ] 의 반복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살짝만 봐도 위와 같은 패턴이지 않나 싶다.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6/25전쟁, 광주민주화운동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의 전과 후 상황을 되짚어 보면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나라는 어디 쯤 와 있는 것일까?

[의존]과 [속박] 사이 쯤은 아닐까?

어제 7.30 재보궐선거가 끝났다. 투표율도 30%를 겨우 넘겼고 투표 결과는 14:1로 여당의 압승이 예상된다고 한다. 세월호 사고로 얼마나 많은 국민이 눈물 흘리고 분노 했는지를 생각해 보면 정말 힘 빠지는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국가가 하는 거짓말에 속아주며 살고 있는 것일까? 나는 또 어떤 거짓말에 속아주며 살고 있는 것일까?


 

어제 이순신의 명량대첩을 그린 ‘명량’ 이라는 영화를 보고 왔다.

전의를 상실한 병사와 두려움에 가득 찬 백성의 마음을 ‘용기’ 로 바꾼 그의 신념을 보며 ‘리더라면 저런 모습이어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우리의 리더는 어떠한가? 국민들의 두려움을 오히려 반기며 이용하지 않나? 그리고 자신들의 거짓말을 덮기 위해 더 큰 거짓말을 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선 국민의 안위 따윈 상관없다. 바로 대의를 위한 소의 희생이라는 그럴듯한 거짓말을 하면서 말이다.

영화 속 이순신의 아들 이회는 아버지에게 왜 아버지를 배신한 임금을 위해 목숨을 받치려 하냐고 묻는다. 이에 이순신은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임금이 있다.” 라는 말을 통해 본인이 목숨을 받쳐 이 나라를 지키려는 것은 임금 때문이 아닌 백성을 향한 충임을 분명히 한다.

나라에서 국민의 내는 세금으로 먹고사는 정치인들 공무원들 그리고 청와대의 사람들의 충(忠)은 어디를 향해 있을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