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과 노제에 쓰일 만장이 정부 측 반대로 불교·유교의 전통 장대 소재인 대나무가 아니라 PVC 파이프에 내걸리게 됐다. 정부 측은 영결식이 집회·시위로 변질돼 대나무 장대가 ‘죽창’으로 쓰일 것을 우려해 반대한 것으로 확인됐다.
28일 행정안전부와 서울 조계사, 연화회 등에 따르면 정부 측은 29일 영결식과 노제에 쓸 대나무 만장 장대 2000여개를 PVC로 교체할 것을 28일 오전 조계사, 연화회 측에 요구했다.
28일 밤 서울 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 사용할 만장이 내걸릴 PVC 장대가 가득 쌓여 있다. <서성일기자>
장대용 대나무 2000여개는 27일 전남 담양에서 선별해 가져온 것으로 조계사에서 보관 중이었다. 정부·경찰 측 요구로 대나무 장대는 4m 길이의 PVC 파이프로 교체됐다.
조계사 관계자는 “연화회에서 불교 의례에 맞게 대나무로 제작하려 하던 차에 정부 측이 갑자기 PVC 교체를 요구해 어쩔 수 없이 바꿨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 측이 최근 여러 집회·시위에서 죽창이 등장했는데, 대나무 만장이 영결식 이후 시위 용품으로 갑자기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전하면서 PVC로 바꿀 것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불교계 관계자는 “종로 경찰서 쪽에서 조계사에 보관할 장소가 없으면 종로서에서 보관해주겠다고 제안했다”며 “말이 보관이지 경찰이 압수하겠다는 취지로 들렸다”고 말했다.
종로서 측은 “대나무 장대를 PVC로 교체하라고 요구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서울지방경찰청 쪽도 “처음 듣는다. 잘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행안부 장의위원회 관계자는 “경찰이 만약의 사태를 우려해 PVC로 교체하기를 원했고, 노 전 대통령 유족 측도 동의했다”고 말했다.
천호선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날 봉하마을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부가 노제에서 사용되는 대나무 만장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며 “그래서 우리(유족 측)가 만장은 전통 장례에서 나온 것이긴 해도 정부 측이 다른 용도로 쓰일 것을 우려한다면 PVC로 하겠다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전례 없이 PVC 장대에 만장을 달게 되자 불교계는 “불교·유교 장례 예법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조계종 기획국장 미등 스님은 “고인에게 보내는 추모, 극락왕생 기원, 공덕 찬탄을 담은 만장 장대는 전통적으로 대나무를 써왔다”며 “깊은 의미가 있는 만장을 PVC에 매다는 것은 불교·유교의 기본적 의례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 불교 신도는 “불교 신도를 모독하는 처사”라며 “대한문 분향소, 서울광장에 이어 대나무 만장도 막는데 도대체 뭐가 그리 두려운 줄 모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