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7] 도토리 자매 - 요시모토 바나나

2016. 11. 22. 13:33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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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7] 도토리 자매 - 요시모토 바나나


부모님의 죽음, 외삼촌의 죽음, 할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돈코는 첫사랑의 죽음까지 도토리 자매는 어린시절부터 누군가의 죽음에 함께 있었다.


 

그렇구나, 줄곧 함께 있을 수 없는 사람과 있는 것은 중독 같은 거구나.


 

누가 먼저 태어나고 누가 먼저 죽느냐의 시점이 다를 뿐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났다. 하지만 죽음이란 죽은자 보다 죽은자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더 가혹하다.

장례를 치르는 것도 남겨진 사람들이고 슬퍼하고, 추모하고, 괴로워 하고, 추억하는 것도, 그들이 떠난 후 변화되는 생활과 삶 또한 오로지 남겨진 사람들의 몫이다.

돈코는 줄곧 함께 있을 수 없는 사람과 있는 것은 중독 같은 거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나는 내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중독되어 있다는 말일 것이다. 일리가 있는 것이 … 내 주변에 있는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 중 누구 하나라도 이 세상을 떠난다면 나는 굉장한 금단 현상을 겪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감사하게도 죽음으로 인한 직접적인 이별을 경험하지 못한 나는 ‘죽음 뒤에 올 영원한 이별’의 형태가 어떠할지 짐작하기가 어렵고 그러하기에 더 두렵다. 나 뿐만아니라 이 세상 누구도 ‘죽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고, 경험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고, 모르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인간이 산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훨씬 적지 않은가.

그런데 왜 다들(나를 포함해) 죽음에 대해선 그렇게 많은 준비와 걱정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선 너무나 당연하게 그냥 살아가는 걸까?


 

이렇게 녹음이 풍성하고 종용한 곳에 있으면, 왠지 모든 게 꿈만 같은 기분이 드네.

모두 다. 연애도, 도토리 자매도, 찻잎을 땄던 것도, 할아버지랑 살았던 것도, 그 집, 이 여행도다.


 

어쩌면 매 순간 죽음에 노출된 삶을 살고 있고 간신히 죽음을 비켜가며 살고 있다해도 ‘산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할까?

나는 어느 날 퇴근길 자동차 안에서 ‘죽음을 담보로 편안함을 선택한 출퇴근을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우리는 (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매 순간이 죽음과 맞닿아 있지만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고 ‘아무일 없음’ 이 당연시 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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