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6] 사랑을 말해줘 - 요시다 슈이치

2016. 11. 22. 13:31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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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 사랑을 말해줘 - 요시다 슈이치


세상의 이야기를 전하는 다큐멘터리 제작자 슌페이, 그리고 귀가 불편한 애인 교코.

'소리'로서 세상과 소통하는 슌페이지만 교코와는 오로지 '정적'속에서 소통한다.


 

온갖 소리로 가득찬 세상에 살고 있는 슌페이나 정적의 세계 속에 살고 있는 교코의 세계는 다른 걸까?

둘의 시작에 있어 소통의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슌페이의 소통이 일방통행이 되는 순간부터 둘의 세계는 달라지기 시작했고 "도중에 내가 뭘 찾으려 하는지 알 수 없게 됐어." 라는 슌페이의 말처럼 둘의 관계도 목적을 잃고 헤메게 됐다.


 

입에서 먼저  튀어나왔던 말을 일단 머릿속에서 문장으로 바꾼 후, 그것을 메모장에 쓴다. 아주 간단한 일이지만, 그 과정이 ‘사람’ 이랄까, ‘인간의 감정’ 을 가라앉혀버리는 일도 있는 것이다.


 

살다보면 듣고싶지 않은 소리도 있고 들어야만 하는 소리도 있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뱉을 때도 있고 설명이 너무 부족해 오해가 생길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오해와 트러블은 그게 무엇이 됐든 너무 과할 때 생기는데, 특히 ‘말’ 이라는 것이 그렇다. ‘말’ 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소통의 수단(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법 또는  도구)이지만 우리는 이 도구를 얼마나 잘 사용하고 있을까?  

말이라는 것은 내가 생각 하는 또는 의미하는 것에 라벨을 붙이는 작업인데 이 말은 내 입에서 내뱉어짐과 동시에 그 의미는 거기에서 끝난다. 왜냐하면 시간의 흐름과 생각의 변화에 따라 그 말에 대한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말이란 만가지의 의미를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기 때문에 하나의 단어라도 그 의미는 다양할 수 있다.

이렇듯 말이란 전달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와 전달 받는자가 이해하는 의미가 다를 수 있다. 그 오해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선 말을 뱉기 전 조금 더 깊은 생각(사유)가 있어야 한다.

아마도 ‘글’이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위에 슌페이의 말처럼 글은 ‘인간의 감정을 가라앉혀버리는’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전달자 입장에서의 ‘말’은 내뱉어 지는 순간 허공속에 흩어져 버리고 전달 받는자 입장에선 뇌에 각인이 되지만 ‘글’은 전달자와 전달받는자 모두의 어딘가(뇌가 됐든 지갑 속이 됐든)에 남고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다시 꺼내 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전달자의 입장에선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말’ 이 편한 것이다.

하지만 말은 즉흥적이고 글은 사유적이다.

말 속엔 나의 정리되지 않은 온갖 감정들이 묻어 있지만, 글엔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더 잘 전달하기 위한 설명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 알고 있으면서도, 어쩌면 폭파될지 모른다고 생각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아니 그럴 리가 없다,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이다. ---- 무슨 일이 어떻게 되어갈 줄 알면서도, 낙관적인 마음 쪽을 믿고, 소리를 높이지 않은 것은 누구인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괜찮다고 생각하고 싶은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는 마음은, 대체 어디로 가버린 걸까.


말이 됐든 글이 됐든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훌륭한 언어 구사력도 아닌 그 의미에 대한 ‘사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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