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뱅킹

2011. 6. 18. 01:21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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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을 준비하고 있는 요즘 괜시리 부모님이 이래저래 마음에 걸린다.
물론 엄마에게 "나 독립할까봐요.." 라고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을때, 엄마는..."그럼 나야 편하지~~~" 라는 의외의 반응을 보여 나를 당황케 하긴 했지만, 막상 독립을 결정하고 집을 계약하니 부모님 또한 마음이 허해 지시나 보다.

그렇다고 내가 딱히 효녀다운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다.
그냥 마음만 있고 행동은 똑같다 ㅡㅡ;;

그래도 뭐라도 하나 효녀흉내를 내고 독립을 해야겠다는 압박에 생각해 낸게 인터넷 뱅킹이다.
부모님은 하루에도 몇번씩 은행을 왔다갔다 하신다.
출금을 위한 것도 있고, 가족(큰아빠 작은아빠 고모분들)내 총무를 맡고계신 아빠는 이체를 위한 방문도 많으신 것 같아 인터넷 뱅킹을 추천해 드렸고 ... 막내딸이 잘 가르쳐 드리겠노라 큰소리를 쳤다.

항상 행동이 빠르신 아빠는 다음날 바로 은행에서 인터넷 뱅킹 신청을 하고 오셨고, 한두시간에 한번꼴로 내게 언제 가르쳐 줄거냐고 압박하기 시작하셨다 ㅋ

하루이틀 몸이 안좋아 계속 미루다..아빠의 압박에 도저히 더는 미룰수가 없어 거실에 노트북을 들고 나가 인터넷 뱅킹 강의를 시작했다.

인터넷 자체도 익숙하지 않으신 부모님께 인터넷 뱅킹이란 말 안통하는 나라에서 혼자 여행 하는 것 만큼 어렵고 두려운 일일 것이다. 몇번을 설명해도 틀리시는건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을...내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짜증이 묻어나는 걸 나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함께 떠오른 어떤 장면이 있었다.
바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한석규에게 비디오를 틀어 달라는 아버지.
시한부 선고를 받은 한석규는 자신이 죽은뒤 혼나 남겨질 아버지를 걱정하며...이런것도 혼자 해보셔야 하다며 비디오 조작 방법을 설명한다.
아버지는 역시나 잘 못알아 들으시고, 속상한 마음에 한석규는 점점 화내듯이 큰소리를 내다가 이내 방을 뛰쳐나간다.
본인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는 아버지(신구)의 순진하고도 무안해 하던 표정이...우리 아빠의 표정과 오버랩 되면서 이상하게 코킅이 찡해졌다.

그래서 다시 인내심(?)을 가지고 가르쳐 드렸다.
공인인증서가 들어있는 USB를 꽂으시고, 은행 사이트에 접속하시고..로그인을 하시고 이걸 누르시고 저걸 누르시고 등등~
그리고 내 계좌로 만원 이만원씩 이체하는 연습을 하시라는 숙제를 내 드리고 나는 방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몇시간뒤 내 통장을 확인해 보니 65만원이나 이체가 돼 있었다.
우리 아빤 진정...열정적이시다!
(오늘은 좀 익숙해 지셨는지 30만원을 이체하셨다.)

항상 새로운것에 관심을 갖고 배우고 싶어하시는 아빠를 보면 이상하게 흐뭇하다 ㅎㅎㅎ;;
이제 내게 뭔가 궁금해 하시거나 배우고 싶어 하시면 꼭꼭 웃는 얼굴로 가르쳐 드려야지 결심(만)해 본다~

생각해 보면...
내가 부모님께 받았던 것들(내게 쏟았던 애정과 시간, 돈, 인내심 등등)을 이젠 돌려드릴때가 된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과연 얼마나 돌려 드릴수나 있을까 싶긴 하지만.

아무 이유없이 내 편을 들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부모님일텐데, 그 빽을 믿어서 인지 맘처럼 다가서지 못하고 살갑게 대하지 못하는 분들 또한 부모님인 것 같다.
떨어져 지내면 부모님에 대한 마음이 더 애틋해 질까, 아님 더 나만 생각하게 될까;
살아계실때 더 잘해야 하는데....
요즘은 부모님 생각을 하면 괜시리 가슴이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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