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 비둘기 - 파트리크 쥐스킨트

2016. 11. 22. 15:26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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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 비둘기 - 파트리크 쥐스킨트

 


조나단 노엘은 어린시절 엄마가 누군가에 의해 잡혀갔다는 소문과 함께 엄마를 잃고, 뒤이어 아빠도 실종된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어린 여동생을 데리고 시골로 내려가고 그곳이 삼촌 집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몇년 간 농사일을 거들다가 3년동안 군복무를 하고 돌아오니 여동생은 이미 어디론가 시집을 가고 난 후다. 삼촌의 권유로 이웃 마을 처녀와 기꺼이 결혼을 하지만 부인은 결혼 한지 4개월 만에 아이를 낳았고, 이듬해 장사꾼과 눈이 맞아 도망간다. 사람이 싫어진 조나단은 모아둔 돈을 가지고 파리로 떠나고 그곳에서 은행 경비직을 얻게되는 행운과 함께 그가 딱 원하던 집까지 얻게 된다.

그 집은 7층으로 된, 여러 가구가 욕실과 화장실을 함께 사용하는 공동주택으로 그는 제일 꼭대기 7층 복도 끝 방에서 매일을 하루같이 30년을 살아가고 있다.

그곳에서 그는 그 어떤 인연도 만들지 않으며 자신의 직업에는 충실했고 자신의 공간을 애인 대신, 친구 대신, 가족 대신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 그 공간을 너무 사랑하는 조나단은 주인에게 그 방을 사기로 하고 집값의 대부분을 지불했고 조금의 잔금만이 남아 있다. 그의 삶은 만족스러웠고 완벽해져 가고 있었다.


그런 평온한 30년을 보내고 있는 그에게 사건이 하나 생긴다.

어느 날 아침, 여느 때와 같이 눈을 뜨고 화장실을 가려고 방문을 연 순간 복도 중간에 앉아있는 비둘기와 눈이 마주친다. 복도는 비둘기 오물로 뒤덮여 있다.

30년의 평온함을, 정적을 깬 그 사건 하나로 그의 하루는 비둘기의 오물로 더럽혀진 복도처럼 엉망이 된다.


도시에서는 인간들의 시선을 피하려면 빗장과 열쇠로 잠금장치가 잘 되어 있으며, 칸막이가 된 공간을 사용하는 것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는 사고조차 할 수 없던 어린 나이에 갑자기 부모가 사라졌고, 제대 후 돌아온 곳에 있어야 할 여동생도 사라졌으며, 안정적인 가정을 꿈꾸며 맞이한 아내는 다른 사내와 눈이 맞아 도망갔다. 그는 예상하지 못한 이별을 해야만 했고 그것은 그에게 불가항력 이었다. ‘도시에서는 인간들의 시선을 피하려면….공간을 사용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라고 말한 것처럼 그는 사람을 피해, 이별을 피해 자신만의 공간(세계)에 집착하고 갇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인지 그는 한없이 불안하고 걱정만 가득하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들에 대해 병적일 정도로 걱정하는 그의 모습이 낯설지 않음이 조금은 씁쓸했다.


실제로 우리가 하는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을 일이고,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며, 걱정의 22%는 사소한 고민이라고 한다. 그리고 걱정의 4%는 우리가 바꿔 놓을 수 있는 일에 대한 것이고 나머지 걱정의 4%는 우리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에 대한 것이라고 한다. 어차피 일어나지 않거나 해결 가능하거나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들에 대한 걱정을 조나단은(우리는 그리고 나는) 그렇게도 끊임없이 나 자신을 괴롭히며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던 거다.


“도대체 사람들이 왜 안 오는 걸까? 왜 나를 구출해 내지 않지? 왜 이렇게 쥐 죽은 듯이 조용한 거야? 다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지? 다른 사람들이 없으면 나 혼자서는 절댈 살 수가 없단 말이야!”

그가 막 소리를 지르던 참이었다. 남들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것이 애늙은이 조나단 노엘에게 너무나 다급하고, 무섭고, 절망적인 것이서 다른 사람들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말을 침묵 속으로 크게 내뱉으려던 중이었다.


그의 불안함의 근원은 바로 혼자 라는 외로움일지도 모른다. 그의 옆에 있던 소중한 모든 이들이 그의 곁을 떠났고, 그는 항상 남겨지는 사람이었다. 상처의 원천봉쇄를 위해 그는 혼자가 되기로 했고 자신만의 완벽한 공간을 만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호텔에 들어선 그가 했던 말 “방의 모양새가 말하자면 관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그것은 관보다 훨씬 넓지도 않았다.” 라고 하며 자신의 방과 크기가 비슷하다고 말한다. 사실 그가 만들어 놓은 공간은 완벽한 집이 아닌, 외롭지 않게 죽을 수 있는 완벽한 ‘관’ 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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